4분기에 접어들면서 공공과 민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십억원 규모의 굵직한
보안 사업이 잇따라 발주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 호황은 아니다. 오히려 '무더기 발주' 관행으로 인한 사업의 질적 저하와 출혈경쟁만 양산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4분기 들어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 상당에 이르는 굵직한 보안 사업이 줄을 이어 발주되고 있다.
먼저 전국 초중고교에서 사용하는
교육행정정보
시스템(NEIS)의 보안
강화를 위한 '웹서비스 침해사고 예방 정보보안시스템 강화사업'이 35억원 규모로 발주됐다. 이 사업은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보안사고가 급증하고 해킹 공격도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민감한 개인정보인 학생들의 학업성적 등 내부 정보를 보호하고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군 역시 육해공 전군 보안 강화 사업을 추진한다. 22억2000만원을 투입해 연말까지 통합보안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상반기 23억원 규모로 추진됐던 행정기관 보안장비 확충의 2차 사업도 5억4000만원 규모로 추가 발주됐으며 시도 행정시스템의 보안강화 사업도 역시 5억원 규모로 추진중이다.
공공 뿐만 아니라 산업계 '큰 손'인 금융권의 보안 투자도 줄을 잇는다. 먼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2년 73억원 예산을 투입해 보안관제 위탁운영 사업을 맡길 업체를 찾고 있으며 3억원을 투입해 망분리 사업도 추진한다. 농협은 현재 400억원을 들여 망분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기에 90억원의 별도 예산을 편성, 보안시스템 강화 사업도 추진한다.
대형 보안사업이 줄을 이어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업계에는 활력이 돌지 않는다. 올 들어 일부 컨설팅,
서비스 업체 한 두 곳을 제외하고 대다수 보안 솔루션, 장비업체들의 실적 부진이 극심했던 터였기에 4분기 대형 사업에 모두 '사활'을 걸고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입찰 제한서 마감 시한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경쟁 입찰 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흘리거나 상대방
기술과 제품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마케팅'도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안업체 임원은 "그간 실적이 너무 안 좋다 보니 4분기 사업을 누가 수주하고 못하느냐에 따라 업체의 1년 실적 전체가 좌우되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서 "그러니 상대방의 작은 언행도 모두 꼬투리를 잡아 서로 헐뜯거나 물밑 로비를 전개하는 등 매우 민감한 상태"라고 전했다.
입찰은 '기술 경쟁'을 표방하고 있으나 결국 최종 결정은 '가격'으로 결정되는 성향이 강하기에 저가 출혈경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군 사업의 경우 1단계 입찰에서 기술력이 되는 업체만 추린 뒤 2단계 입찰에서 '최저가 입찰'을 이행하기 때문에 업체간 출혈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대형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영업인력은 물론이고 사업을 수주해도 이를 수행할 전문 보안 기술인력 확보가 쉽지 않아 문제가 심각하다. 업계 임원은 "업체가 보유한 고급 기술자는 한계가 있는데 사업은 한꺼번에 나온다.
고객들은 고급기술자 투입을 바라고, 업체는 한정된 인력을 정해진 시간 안에 투입해야 하다 보니 사업의 질적 하락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문제는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매년 보안 사업은 연말에 무더기로 발주되는 관행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예산 중에서 우선순위가 한참 밀리는 것이 정보화 예산인데다, 이중 보안 예산 집행은 그 우선순위가 더 떨어지다보니 '연말에 예산 남으면 보안사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발주되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안업체의 실적 공시와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가 조사하는 '국내 정보보호업계 매출 현황'을 종합해 보면 보안업계의 연간 매출 중 50% 가량이 4분기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임원은 "1년 내내 놀다가 연말엔 사람이 없어 나오는 사업도 제대로 수주 못하고 수익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보안 사업 우선 순위를 뒤로 미루는 관행을 개선해 연중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년째 하고 있으나 대형 보안사고가 아무리 터져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아직 그 관행을 고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은성기자 esth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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